오늘의 일상 - 마트와 무채색 옷, 그리고 잠의 중첩
오늘은 일요일. 평소보다 한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.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, 그 자체가 오히려 특별한 느낌을 주었다.
아침에는 집에서 여유롭게 쉬다가, 오후가 되니 바람도 쐬고 싶고 필요한 물건들도 사야 할 것 같아서 슬쩍 외출했다.
다이소랑 마트를 다녀왔는데, 사실은 마트 안에 있는 다이소였다.
뭔가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, 필요한 물건만 사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잠시, 결국 다이소에서 자잘한 물건들을 한가득 사버렸다.계획이란 언제나 현실 앞에서 흐릿해진다.
마트에서도 이번 주 내내 먹을 간편식들을 챙겼다.
사실 집에서 요리를 할 일이 거의 없으니, 전자레인지가 주방의 중심을 차지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.
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하며 가디건과 점퍼도 몇 벌 샀는데, 집에 돌아와 보니 결국 전부 다 비슷한 옷들이었다.
흰색, 검은색, 남색, 회색. 옷장을 열어보니 내 옷들은 그저 무채색들로 가득했다.
어릴 때만 해도 원색도 좋아하던 내가, 이제는 튀지 않는 색깔들만 고르고 있다.
문득 생각했다. 언제부터였을까?
마치 내가 변화라는 과정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채, 어느 날 그 결과를 그냥 받아들이게 된 느낌.
이제 남은 시간은 내일 있을 미팅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. 오늘은 완벽하게 준비할 마음은 없었다.
적당히 필요한 자료들을 정리하고, 나머지 시간은 축구 중계를 보면서 보내기로 했다.
축구를 보는 일요일 저녁은 늘 그랬듯 평화롭고 반복되는 리듬이다.
그러나 한 가지, 저녁이 지나면 나는 다시 두 가지 가능성 속에 놓이게 된다.
오늘은 일찍 잠자리에 들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.
하지만 동시에, 이른 잠을 거부하고 밤 늦게까지 깨어 있을 나 역시 존재한다.
이건 단순한 고민이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.
지금 이 순간 나는 두 가지 가능성 속에 중첩되어 있다.
일찍 잠들 가능성, 그리고 늦게까지 깨어 있을 가능성이 나란히 겹쳐진 채로 존재하는 것이다.
이 상태는 결정되지 않았다. 모든 것이 관측되는 순간에만 나의 상태가 확정된다.
내가 이불 속에 들어가고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는, 나는 그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중첩된 채로 떠돌고 있다.
일찍 잠들 것인가, 아니면 또다시 새벽까지 깨어 있을 것인가?
답은 알 수 없고, 그 결정은 내가 이 순간을 관측하는 때에만 이루어질 것이다.